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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5일 은 어린이날..

1추남 2009. 5. 5.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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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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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의 어린이날

 

「어린이날」 - 오월 일일이 왔다. 조선에서 처음으로 어린이에게도 사람의 권리를 주는 동시에 사람의 대우를 하자고 떠드는 날이 돌아왔다. 몇몇 대 조상 적부터 애나 어른이나 사람의 허물을 쓰고 사람으로 살지 못한 것은 우리의 골수에 박힌 원한이다. 지금에 우리 조선 사람은 어른이나 애나 누가 사람의 권리가 있으며 사람의 대우를 받는가. 생각하면 실로 기가 막히는 일이다. 첫째 먹을 것 입을 것이 없고 편안히 쉴 집이 없는 터이라 사람 노릇을 하려 할지라도 할 수가 없는 것은 자연한 형세이라. 이에 뜻있는 몇 사람의 발기로 일어나게 된 소년운동협회(少年運動協會)라는 곳에서 '젊은이나 늙은이는 이미 희망은 없다. 우리는 오직 나머지 힘을 다하여 가련한 우리 후생(後生) 되는 어린이에게 희망을 주고 생명의 길을 열어주자'하는 취지로 오늘 - 오월 일일을 어린이의 날로 작정하여 가지고 어린이를 위하여 힘을 합하여 일을 하자고 선전하는 동시에 다만 하루의 짧은 시간이라도 그들에게 기쁨이 있게 하고 복이 있게 하자는 오늘이라 한다. 조선의 어린이여, 그대들에게 복이 있으라. 조선의 부형들이여, 그대들에게 정성이 있으라.

1923년 5월 1일 <동아일보> 3면에 실린 '오늘 어린이날'이라는 기사이다. 소파(小波) 방정환(方定煥)이 색동회와 함께 어린이날을 처음 만들었을 때의 어린이날은 지금처럼 5월 5일이 아닌 5월 1일이었다. 이날 <동아일보>는 '「메이데이」와 어린이날'이라는 사설을 1면에 실어 '「어린이날」은 사람을 농물시(弄物視) 하는 조선(朝鮮) 부형(父兄)에게 「우리도 사람이니 사람의 대우(待遇)를 해달라」는 어린이의 인적해방(人的解放)을 호소(呼訴)하는 기념일(紀念日)'이라고 정의하면서 어린이날을 꽤 비중 있게 다루었는데, 그 뒤로 며칠 동안은 대전, 공주, 마산 등 지방에서 이어지는 어린이날 기념식 관련 기사가 실릴 정도로 당시 민중의 큰 호응을 받았다. 그나저나 그때나 지금이나 어린이는 어른들의 '희망'인 것 같기는 한데, 그 희망을 어른들은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린이의 인격을 존중하고 행복을 도모하기 위해 정한 기념일.

 

1922년 방정환 (方定煥)의 지도 아래 천도교 서울지부 소년회를 중심으로 5월 1일을 기념일로 정한 것으로 출발했다. 초기 어린이날의 취지에는 어린이들에게 민족정신을 고취하는 뜻이 들어 있었고, 1925년의 어린이날 기념행사에 전국의 소년·소녀들이 30만 명이나 참가할 정도로 성장했다. 그뒤 매년 다양한 행사를 거행했으나, 일제강점기 말기 총독부의 민족말살정책에 의해 1939년 일시 중단되기도 했다. 8·15해방 이후, 1946년부터 날짜를 5월 5일로 바꾸어 어린이날 기념행사를 재개했는데, 1957년 제35회 어린이날을 기점으로 내무부·법무부·문교부·보건사회부의 4개 부처 장관의 명의로 어린이헌장을 공포하여 어린이에 대한 기본사상을 재정립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자녀들 대신 놀이기구 줄을 서는 아빠들

 

주말이나 어린이날 놀이공원에 가면 아주 재미있는 풍경이 하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거리는 사이로 아빠는 놀이기구를 타지 않고 줄 서는 일을 전담한다. 아이들과 엄마가 놀이기구를 타는 동안 아빠는 서둘러 다른 놀이기구에 줄을 선다. 그리고 아이들과 엄마가 그 놀이기구를 타고 오면 아빠 옆으로 끼어 들고, 다시 아빠는 다른 놀이기구 앞으로 달려가 줄을 선다. 이것은 아마 전 세계에서 한국에서만 볼 수 있는 풍경일 것이다. 이것이 진정 자녀를 위한 것인가? 거기서 아빠는 가족의 종이지, 가장이 아니다. 가족이라는 것은 기다리는 것도 함께, 타는 것도 함께 하는 것이다. 기다리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놀이기구를 타면서 함께 소리 지르는 것이 가족이지, 어느 한쪽이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희생하는 것을 자녀는 정말로 고맙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평생 동안 자신을 위해 봉사하는 존재로 부모를 인식하기 쉽다.

 

  

 

자녀를 위해 부모가 희생하면 둘 다 그 삶이 없다.

 

그동안 우리는 어머니의 희생, 부모의 희생에 대해 너무나도 많이 거론해 왔다. 우리는 어머니의 노고와 산고에 대해, 부모의 엄청난 희생에 대해, 훌륭한 어머니는 곧 희생적인 어머니라는 믿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들은 쉽사리 사라지지 않는 신화들이다. 그러나 순교자 같은 어머니는 희생하는 것이 아니다. 무조건 사랑은 있을지 모르지만 무조건적인 희생은 없다. 엄밀하게 말해 자녀로 인해 그녀의 삶이 존재한다. 오히려 자녀는 그녀의 삶을 지탱해 주는 힘인 것이다. 그래서 잘못하면 자녀에게 보상을 바라는 쪽으로 마음이 형성될 수 있으며, 항상 자기가 자녀에게 해준 모든 일을 상기시키려 한다. 자녀는 낳아달라고 부탁한 적도 없는데, 어머니는 자녀의 일생에 계속 간섭하는 것이다.

 

 

 

즐거움이든 어려움이든 함께 하는 것이 가족이다.

 

자녀를 위해 기러기 아빠를 자처하면서 자녀를 유학시키는 부모들이 많은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데 여기서 가장 조심해야 할 점은 “너희들 때문에 내가 여기에 왔다. 너를 위해 우리 부모들이 떨어져 산다. 이렇게 고생하는 것이 모두 너 때문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런 말들은 자녀에게 부담을 주고, 그 부담은 자녀에게 스트레스로 작용하여 여러 가지 문제를 일으킨다. 자녀가 뛰어나서 스스로 유학을 원하고, 자기 동기에 의해 유학을 왔다면 부모는 도와주는 입장이 된다. 그러면 자녀는 부모에게 고마워 한다. 하지만 부모가 원해서 부모의 욕심으로 자녀를 끌고 유학을 왔다면 자녀는 당연히 모든 책임을 그 부모에게 돌릴 것이다.

 

“이 고생이 다 너 때문이다.”

“내가 남편 복이 있니, 집안 복이 있니? 엄마는 너 밖에 없다.”

“너는 아버지 같은 사람은 절대 되지 마라.”

“너는 돈 걱정 안 해도 돼. 다른 것은 걱정하지 마. 너는 공부만 하면 돼.”

 

이런 말들은 모두 극도로 자녀에게 부담을 주고, 그래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 스트레스는 그대로 뇌에 저장되어 자녀로 하여금 부모에게 복수하게 하는 빌미가 될 가능성이 높다. 단지 그 복수가 금방 눈으로 띄지 않거나 오래 걸려 잘 인식하지 못할 뿐이다. 부모는 자녀를 위해 희생하는 사람이 아니다. 아버지는 자녀를 위해 돈을 벌어다 주고, 엄마는 자녀를 위해 희생하는 것이 가족이 아니다. 자녀는 부모의 희생을 행복해 하지 않는다. 오히려 부모가 자식을 키우면서 행복감을 느낀다면 부모가 자식에게 고마워 해야 할지 모른다. 기쁨을 주는 것에 감사해야 한다. 부모의 은혜와 더불어 자식의 은혜도 있는 것이다. 자녀와 부모는 함께 살아가는 것이다. 누구의 소유도 아닌 서로 돕고 서로 위로하며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어린이날 노래와 유래☆~

‘빛나는 꿈의 계절’사월의 눈부신 꽃잔치에 이어 ‘계절의 여왕’오월은
초록의 신선함으로 산야가 온통 출렁이기 시작한다.
‘가정의 달’ 오월이면 먼저 ‘어린이날’을 맞게 된다.
  
‘어린이’란 말을 처음 사용한 사람은 소파 방정환선생이다(1921년).
우리나라의 어린이날의 역사를 살펴보면
첫번째 어린이날은 1923년 5월 1일이었다.
방정환, 마해송, 윤극영 등이 주축이 된 ,<색동회>가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했다가
일제의 방해와 감시로 기념식 금지,
어린이날 폐지(1938)로 이어졌고
해방 이듬해 1946년 5월 첫째 일요일을
어린이날로 부활했는데
이날이 5월 5일이었다. 1975년에 5월 5일을
정식 공휴일로 지정한 것이
우리나라의 어린이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