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에서 집짓기 (설계는 어떻게 할까)|
시골에서 집짓기 (설계는 어떻게 할까)
전용면적 25평 설계사무소가 보유한 도면으로 적당히 배치한 김씨 집 설계도. 거실은 북동향이며, 두 침실에는 거의 햇볕이 들지 않는다. 두 건물 사이의 남쪽 땅은 사실상 접근이 어렵다. 방향이 좋은 건물 남쪽은 안방 장롱과 욕실로 막혀 있어 주거환경이 좋지 않다.
집을 지으려면 사전에 건축법에 의한 건축행위허가를 받아야 한다. 건축행위허가는 건축허가와 건축신고로 나뉘는데, 건축허가에 비해 건축신고는 그 절차와 설계도서를 간소화해주는 제도다. 건축신고 대상은 ‘농촌지역(관리지역·농림지역·자연환경보전지역)’에 지어지는 200㎡(약 61평) 이하이고 3층 이하인 집을 말하기 때문에 대부분의 농촌주택은 건축신고 대상이다. 하지만 건축신고는 설계도서를 건축사가 작성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제외하면 건축허가와 별반 차이가 없다. 설계비를 절약하고 싶다면 농림축산식품부가 개발해 보급 중인 ‘농촌주택표준설계도’를 활용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표준화된 설계도는 현대인들의 다양한 욕구를 수용하기 어려울 뿐 아니라 집터의 위치나 모양 등 환경이 제각각인 시골집에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설계는 누구한테 어떻게 부탁해야 할까? 시골집을 지으려는 사람들은 설계하기 앞서 시공업체와 접촉해 소요 예산을 알아보는 경우가 많은데, 시공업체는 집을 짓는 것은 물론 설계와 관련된 모든 절차도 알아서 다 해주겠다고 제안한다. 어떤 시공자는 조감도까지 그려진 카탈로그를 만들어가지고 다니기도 한다. 그런 집들의 대부분은 아파트처럼 정방형에 가까운 평면이거나 경량목조로 양식화된 집들이다. 시공자가 아파트형 평면을 선호하는 이유는 외피면적이 적어서 공사비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큰 거실창 앞에 처마를 한뼘으로 짧게 만드는 것도 공사비를 줄이기 위해서다. 또한 아파트형 평면은 도시주택이 그렇듯이 모든 공간을 내부와 외부로 나눠서 단절시켜 버린다. 반면에 시골집은 땅들이 제각각이기 때문에 곳곳이 다르며, 무엇보다 반 외부인 마당이 중요하다. 집은 어떻게든 만들어지겠지만 외부공간의 활용이나 외부환경과의 관계는 치명적으로 나빠질 수도 있다. 시골살이에 적합하지 않은 집이 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설계까지 공짜로 해준다고 한다면 당신은 유혹에 빠질 수 있다. 그들 역시 건축사에게 건축신고도서를 의뢰하지만, 그 설계업체가 당신의 꿈을 위해 제대로 고민해줄 리는 만무하다. 그들의 역할은 시공업체가 제공하는 도면에 배치도만 그려서 신고도서를 작성해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건축설계사무소에 설계를 직접 의뢰한다고 해서 원하는 좋은 설계를 꼭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귀농 18년 만에 처음으로 집을 짓기로 한 김씨 부부의 사례를 보자. 김씨는 군청 앞 설계사무실에서 설계를 ‘뽑았다’. 그가 사는 마을은 동쪽면의 산자락에 있고 집터는 마을 안길의 남쪽에 접해 있다. 부지의 남쪽 끝에 위치한 옛집을 그대로 두고 새집을 짓기로 했는데, 설계안을 보니 마당은 좁아지고, 거실은 북동향, 침실은 언덕에 막혀 햇볕이 거의 들지 않는 배치였다. 김씨는 정당한 설계비를 지불하고도 왜 이런 상황에 놓이게 되었을까? 건축사가 당신이 꿈꾸는 당신만의 집을 설계하기보다는 단지 건축신고도서를 작성하려 했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만들어져 있는 설계도 중 당신의 요구에 가장 가까운 것을 자신의 도면 창고에서 찾아냈을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김씨의 건축사는 현장에 나와 보지도 않았다. 당신이 원하는 좋은 설계를 얻으려면 여러번에 걸쳐 당신과 만나서 당신의 꿈을 들어주고, 그것을 건축 스케치로 옮기고, 다시 토론하고, 모형을 만들어 보여주는 건축가가 필요하다. 그리고 당신은 건축가가 투자한 시간과 노력에 대한 정당한 비용을 지불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