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례와 세배 및 덕담에 관한 이야기
설 잘 쇠시고 건강하게 뵙지요.
설에 먹는 것이 떡국인가,떡죽인가?
떡국이라 알고 있을 것이나
국은 밥의 보조식품,반찬이요
죽은 밥의 대용식품이라..
떡국은 어울리지 않는 말이요
떡죽이라고 불러야 옳으리라...
아무튼...
차례에 차 올리시고
떡죽(국) 맛있게 드시고
세배도 드리시고(받으시고)
덕담은...?
절 받은 분이 하시기를...
ㅋㅋ
차례와 세배 및 덕담에 관한 이야기
차(茶)를 올려야 차례(茶禮)이다.-차례와 세배 및 덕담에 관한 이야기
1. 차례(茶禮)란 무엇인가?
우리 민족이라면 누구나 추석이나 설 명절에 차례를 지낸다. 누구나 늘 지내는 차례이기에 별 생각 없이 지내지만 차례만큼 잘 모르는 것도 없을 성 싶다. 차례는 국어사전에 '음력으로 다달이 초하루, 보름, 또는 그 밖에 명절이나 조상 생일 등에 지내는 간단한 낮 제사' 라고 나온다. 그러나 간단한 낮 제사라고 해서는 그 뜻을 제대로 헤아릴 수 없다. 차례의 본뜻을 제대로 알기 위해 역사책을 한 번 살펴보자.
기록상 차례의 효시는 충담스님이 미륵세존님께 차를 다려 올린 것이다. 하지만 그 이전에도 가락국 김수로왕의 17대손 갱세급간이 가락국 종묘에 차례 지낸 이야기가 나오고, 문무왕의 아들인 보질도(寶叱徒)와 효명(孝明)이 오대산에서 날마다 산골짜기의 물로 차를 달여 1만의 문수보살에 공양한 이야기도 있다. 또 중국에서는 송 문제(文帝) 3년(426) 유경숙의〈이원(異苑)〉에 차례 지낸 내용이 나온다. 한편, 국교가 불교인 고려에서는 연등회와 팔관회, 사신 영접, 왕자(녀)와 태후 등의 서임과 공주의 결혼식, 원자 탄생, 중형벌자 판결을 위한 문답의식에도 차례를 지냈을 정도로 차가 성행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표훈대덕(表訓大德)」조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나온다. 경덕왕(景德王)이 즉위한 지 24년 되던 해(765) 삼짇날(음력 3월 3일) 귀정문(歸正門)에 올랐다. 왕이 능력 있는 스님을 데려오라 하자 위의(威儀)를 갖춘 큰스님을 데리고 왔다. 그런데 왕은 자기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며 내쳤다. 다시 스님 한 사람이 납의(衲衣)를 걸치고 앵통(櫻筒) 혹은 삼태기를 걸치고 오는 모습을 보고 기쁜 표정으로 누상으로 인도했다. 왕과 대화가 시작되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충담(忠談)이옵니다."
"어디서 오는 길인가?"
"삼화령(三花嶺)에서 오는 길입니다."
"무엇하고 오시었소?"
"저는 매년 3월 삼짇날과 9월 중양절이면 차를 달여서 삼화령의 미륵세존(彌勒世尊)님께 드립니다. 오늘도 차를 드리고 오는 길입니다."
"나에게도 한 잔 주겠소?"
"물론이지요."
스님이 차를 달여 왕께 드렸는데 맛이 신묘하고 그릇 속에 향기가 그윽하였다.
"내 듣건대 스님이 기파랑(耆婆郞)을 찬미한 노래가 뜻이 깊다는데, 나에게도 백성을 다스려 편안히 살 노래를 지어줄 수 없겠소."
스님은 그 자리에서 「안민가(安民歌)」를 지어 바쳤다.
임금은 아버지이고
신하는 사랑을 하실 어머니요,
백성은 어리석은 아이라고 할지면
백성은 그 사랑을 알리라.
꾸물거리는 물생(物生)에게 이를 먹여 다스린다.
이 땅을 버리고 어디로 가겠는가 하면
나라 안의 유지됨을 알리라.
아아, 임금답게, 신하답게, 백성답게 할지면
나라 안이 태평하리라.
그것이 다도(茶道)의 비롯=우는살(嚆矢)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여러 자료에서 충담스님의 이야기를 소개하고는 있지만 모두들 '다도(茶道)' 또는 재주 예자를 써서 '다예(茶藝)의 효시'라고만 했지, 예도 예자를 쓴 '차례(茶禮)'에 주목하는 이는 없었다. 하지만 부처님께 차와 향을 올리고 절하는 것을 예불(禮佛)이라 하는 것처럼 충담스님의 그것도 차례라고 불러야 하리라. 그리고 충담스님이 중요하고 좋은 날 부처님께 차를 올리고 나서 다른 일을 했듯이, 모든 후손들이 모여서 조상님께 차례를 올리고 나서 다른 일을 하는 아주 중요한 행사가 차례이다.
2. 차례에 관한 옛 이야기와 의식
불교의 보기를 더 찾아보면 큰스님들의 탄신일에 지내는 제사를 다례(茶禮)라 하고, 아침에 올리는 예불에 차를 올리면서 하는 예불의 게송이라 하여 다게(茶偈 )라 할 뿐만 아니라 낮에 올리는 불공에도 차를 올릴 때 하는 의식인 다게가 꼭 들어간다. 특히 4월8일 스님중의 큰스님이신 석가모니 부처님오신 날 차를 올린다는 기록이 선원(禪院)의 청규를 담은 백장(百丈禪師: 720-814) 청규(淸規)권2 불강탄조(佛降誕條)에 나온다. 부처님오신 날 향화 등촉과 다과 진수를 올리고 공양한다는 내용이다. 불교의 제반의식을 편집해 놓은 석문의범(釋門儀範)의 모본이라 할 수 있는 책이 백파(白坡: 1767-1852)스님의 작법귀감(作法龜鑑)이다. 작법귀감에 천도의식 전에 영가를 부르는 의식인 대령 진행방법을 담은 것이 대령정의(對靈正儀)편이다. 대령정의 가운데 다게(茶偈)에 "내 이제 청정수를 감로차로 만들어서 증명(證明)님께 올리오니 어여삐 여겨 받아주소서 (我今淸淨水 變爲甘露茶 奉獻證明前 願垂哀納受)" 하는 내용이 실려 있다. 여기서 증명은 죽은 이의 영혼을 아미타부처님께 인도하는 대성인로왕보살(大聖引路王菩薩)을 이르는 말로 주로 지장보살이 그 역할을 담당하지만 관세음보살 등 다른 보살도 그 역할이 가능하다. 늘 부처님께 올리는 횟수 많은 예불에는 청정수를 올리고 나머지는 차를 썼음이 다른 모든 의식문제에 차를 올리는 내용을 보아 알 수 있다. 작법귀감의 다게 바로 다음에 나오는 국혼청에도 법주가 차를 올리고 삼배드리는 예식이 나와 있을 정도이다. 아쉽게도 다게는 오늘날까지 아침예불에 전승되고 있으나 근래에는 조계종 사찰과 불교방송, 불교텔레비전에서 아침저녁 예불을 오분향례(五分香禮)로 단순화하면서 사라져 가고 있다.
3. 차례에 술 또는 물을 쓰게 된 연유
그런데 왜 차례라는 이름 속에 들어 있는 차는 어디로 가고 술만 쓰고, 차례의 종가인 불교에서는 차례라는 말이 잘 쓰이지 않게 되었을까? 불교를 탄압하고 유교를 숭상한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이념 때문에 차례를 지내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국조오례의〉등의 기록에 의하면 종묘제례와 중국, 일본의 사신에 대한 다례 등 빈례(賓禮)에 차를 사용한 것이 여러 번 나오므로 차례는 계속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면 언제 차의 사용이 줄게 되었을까? 임진왜란, 병자호란 등의 전쟁으로 국가경제가 피폐해지고, 차가 기호식품으로 양반들의 사랑을 받게 되면서 수탈이 심해지자 농민들이 차밭을 태워버리기도 하였다. 특히 임란 때 차 도자기 굽는 도공들을 다 끌어갔기 때문에 백성들의 생활을 걱정해서 영조(英祖)임금이 왕명으로 '귀하고 비싼 차 대신 술이나 뜨거운 물 즉 숭늉'을 대신 쓸 것을 지시한 후부터 차례에 술이 등장하게 되었다. 이와 같이 차례에 차가 빠지고 대신 술이 쓰이게 된 것은 사회, 경제적 이유에서 영조 때부터로 추정된다. 그러다 보니 가정의 차례에는 이름에 차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차 대신 술을 쓰는 것이 당연시되고 보편화되었던 것이다. 그럼으로써 일반인의 뇌리 속에 차 없는 차례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국화 없는 국화빵이요, 붕어 없는 붕어빵 같은 모양이 된 것이다.
4. 차를 올렸다는 유림(儒林) 이 목선생의 홀기(笏記)
유교의 제사에도 차를 쓰는 것이 바른 예법이라고 한다. 유교 예법의 창시자라 할 수 있는 주자(朱子: 1130-1200)가 차와 관련이 있는 고장에서 생활했고 뒷날 명나라의 구준(丘濬)이 편집한 주자가례(朱子家禮)에도 차를 쓴다고 적혀있다. 또한, 우리나라 유가의 다례는 주자보다 2백여년 앞선 최승로(926-989)의 상례 때 뇌원차와 대차를 왕이 내린 것에서 훨씬 빨리 성립되었음을 찾아볼 수 있었고, 신식(申湜: 1551-1623)의〈가례언해(家禮諺解)〉에 정월, 동지 삭망(초하루와 보름)에 차례 지내는 이야기가 나온다.
조선 연산군 4년에 무오사화 때 조의제문(弔義祭文) 사건에 연루되어 참형당한 한재(寒齋) 이목(李 穆)선생의 5백주기 추모제에 모여서 제사를 지내던 이들이 이목선생의 부조묘(父祖廟)에 제사를 지낸 홀기(笏記)에서 “철갱봉차(撤羹奉茶)” 즉 “국을 내리고 차를 올렸다”는 내용이 발견한 일이 있었다. 한재(寒齋)의 종중(宗中)에서는 긴급회의를 열어 종전대로 숭늉을 올릴 것이냐 한재선생이 조상님께 올린대로 차를 올릴 것이냐를 논의한 끝에 조상님이 하신대로 차를 올려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한재선생은 경기도 김포출신으로 김종직(金宗直) 선생에게 수학하여 25세 때 장원급제하고 영안남도(함경남도) 병마평사를 거친 인물로 참형 당하고 부관참시가지 당했다가 중종 때 복권되어 이조판서 등을 추중받기도 한 곧은 인물이다. 『동다송(東茶頌)』을 지은 초의선사(草衣禪師)보다도 3백여 년이나 앞서서 1300여자의 다부(茶賦)를 그의 문집인 『한재문집(寒齋文集)』에 남겨 ‘차의 아버지’로 칭송하는 이들이 많을 정도로 차와 관련이 많은 분이다. 이렇게 유가에서도 이미 조선시대에 차를 올린 것이 기록에서도 분명히 드러나 있는 것이나 차례에 차를 써야 한다는 것은 종교와 관계없이 동일한 것이다. 즉 차례에는 반드시 차를 올려야 하는 것이다. 집안에서 내려오는 풍습상 술을 쓰더라도 차는 꼭 따로 올렸으면 한다. 의식은 집안에서 내려오는 방식을 따르되 어느 종교나 진행하는 사람만 의식을 알거나 읽고 나머지는 멋모르고 절만 하는데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의식문을 한글로 지어서 전 가족이 같이 읽으면 좋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구성원 회의를 통해 뜻을 모아야 할 것이다.
5. 불교의 차례
1) 불교 차례의 정신
우리 선조들은 차를 대단히 귀하게 여겨서 며느리가 들어왔을 때 사람됨을 알아보는 데에도 차를 썼다. 며느리의 솜씨로 직접 달인 차를 조상의 사당에 올리고 말이 없는 조상대신에 그 차를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나눠 마시는 것을 고묘(告廟) 또는 묘견례(廟見禮)에서의 회음(會飮)이라 했다. 그것이 오늘날 음복(飮福)문화로 바뀐 것이다. 따라서, 5천년 역사와 문화민족임을 자랑해온 우리가 차례에서 차를 빼서는 안 된다. 반드시 차를 써야 한다. 단, 모든 것이 민주적인 현대사회에서 가족 구성원 중 어느 개인의 의견대로만 해서는 안 되므로 회의를 통해 의견을 일치해서 차를 꼭 쓰도록 했으면 한다. 요즘은 누구나 차를 가지고 있는 시대이며, 제사에 쓰는 술 종류가 요즘 사람들의 입맛을 따라가지 못하는 데서 차의 사용은 이제 설득력을 얻기가 쉬울 것 같다. 불교, 비 불교인을 떠나서 전 국민이 차를 써야 할 것으로 본다. 그리고, 불자라면 불교의식으로 차례를 지냈으면 하는 바램에서 차례의식을 편성해서 보급하고 있는 것이다.
2) 위패 쓰기와 상차리기
위패와 상차리기도 전 국민이 고민하는데 정신만 바로 알면 문제가 없다. 일반 가정에서 위패(지방)를 쓸 때는 관직이 없는 아버지의 경우 '현고학생부군신위(顯考學生府君神位)', 어머니의 경우는 '현비유인(본)(관)(성)씨신위(顯孺人本貫姓氏神位)'로 쓴다. 유인은 본래 종9품 벼슬을 한 이의 부인을 일컫는 내명부의 직위인데 돌아가신 분께는 올려서 쓰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아버지의 보기를 들면 '선엄부(본)(관)(성)공(이)(름)영가(先嚴父本貫姓公이름靈駕)'라고 쓴다. 아주 더 불교적으로 하면 ‘선엄부 청신사 본관 성공 이름영가’라고 할 수 있다. 이름대신에 법명을 자주 썼다면 법명을 쓸 수도 있을 것이다.
차례상은 각 가정에서 준비한 대로 차리되 생명을 존중하는 불교정신에 따라 고기와 생선은 가급적 덜 쓰도록 노력한다. 그리고 순서는 유가에서 홍동백서(紅東白西)니, 두동미서(頭東尾西)니, 조율시이(棗栗柹梨)니 하는 원칙을 이야기 하지만 조상님이 맛있는 것부터 잡수기 좋도록 진설하면 된다. 홍동백서와 조율시이는 원칙이 서로 어긋난다. 양식집에 가서 전식(에피타이저)을 먼저 먹고, 본 음식 먹고,후식( 디저트)을 먹듯이 조상님이 잡숫고 싶어 할 것으로 생각하는 순서대로 진설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지금 우리 자손들이 먹지 않는 것을 모양내듯이 진설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은 외국 농산물 안 쓰기는 애국심의 차원에서 할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조상님께 드려서 좋은 것이라면 국내산, 외국산을 가릴 것이 아니다. 다만 요즘은 국내산이 질이나 보관 면에서 훨씬 낫기 때문에 국산을 애용하자고 해야 한다.
(참고삼아 필자가 구성한 불교차례의식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1) 미타거불(彌陀擧佛): 부처님을 모시는 의식
나무 극락도사 아미타불 (큰절)
나무 좌보처 관세음보살 (큰절)
나무 우보처 대세지보살 (큰절)
2) 다게(茶偈): 차를 올리는 시
시방삼세 부처님과 청정 미묘하신 법과 삼승사과의 해탈 얻으신 승가에 공양하오니 자비롭게 감응하여 주십시오. ①
3) 청혼(請魂): 조상님 영가를 모시는 의식
금일 --- 영가시여 저희들이 모시는 (추석,설)차례(기제사)에 오셔서 감응하여 주십시오. (차를 올리고 재자들 모두 큰 절 2배) ②
4) 공양: 공양을 올리는 의식
저희 자손들이 (계, 정, 혜, 해탈, 해탈지견의) 5분향을 공양하오니 자성의 큰 지혜를 발하고 반야의 밝은 등을 켜서 3계의 어둠을 밝히소서.
조주스님의 맑은 차를 드리오니 목마름을 아주 없애소서. ③
선계의 진품과일을 올리오니 맛보소서.
진수를 올리오니 허기를 영원히 없애소서.
오늘 --- 영가께 올린 모든 진수는 하늘에서 내려온 것도 땅에서 솟은 것도 아니요 저희들의 작은 정성이오니 맛있게 잡수소서.
(잠시 쉬면서 조상님을 추모하는 담소 시간을 가짐)
5) 보공양진언: 조상님과 다른 영가께 모두 공양되도록 하는 진언
옴 아아나 삼바바 바아라 훔 (3)
6) 보회향진언: 마무리하는 진언
옴 사마라 사마라 미마나 사라마하 자가라바 훔 (3)
7) 발원: 원을 세우고 조상님에 대한 추모의 생각을 키움
오늘의 공양으로 진리를 깨달아 아미타부처님의 국토인 극락세계에 태어나시고 저희들이 건강한 몸과 건전한 정신으로 올바르게 살고 깨달음을 얻는 길로 이끌어 주소서.
나무아미타불(10념) (큰절 2배후 헌식하고 그릇의 뚜껑을 닫고 위패를 사른다.)
*그런데 사실 어린이도 있고 처음으로 하려면 쑥스러운 것도 있어서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그런 때는 상차림-그것도 정성껏 차리는 것이 제일 바람직한 제수 진설법임-을 해 놓고 후손들이 모여서
“조상님 어서 오십시오...하고 큰 절 하고
조상님 맛있게 드십시오....하고 큰 절하고
조상님 안녕히 가십시오...하고 큰 절해도 좋다고 본다..
다만 제대로 또는 불교식으로 하고싶을 때는 위와 같이 하라는 것이다.
*설에 차례지낸 뒤 세배를 하는데
절하는 사람이 덕담을 하는 것은 본래 예의에 어긋난다.
덕담은 본뜻은 덕 있는 이가 아랫사람에게 덕을 나누는데 그것은 재물로 하거나
가르침으로 하는 것이 덕담이다. 다라서 아랫사람은 절을 하고 웃어른은 선물을 주거나 돈을 주거나 덕담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절을 하고 앉아서 기다리면 어른이
물건,돈,덕담을 내리는 것이다.
그러나 아랫사람도 하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이므로 용채봉투를 드리거나 덕담을
하되 과거 확인형으로 하면 된다.
예를 들면
“ 새 해에는 건강하셨다지요?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