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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불이정토로 가는 길 5.성불이란 무엇인가..

1추남 2008. 5. 11. 20:15

5. 성불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이상에서 말한 것을 종합하여 본다면 불교란 성불의 가르침이고 또 부처가 된다는 것은 모두가 가지고 있는 불성이라는 거울에 낀 자기 합리화와 자기변명이라는 이물질을 제거하여 참 나를 보고 그것을 인정함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엄격히 말하면 그것은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할 수는 있어도 완전한 부처를 이루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깨달음을 얻는 것과 완전한 부처를 이루는 것에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 것일까? 이러한 의문에 대하여 이제부터 구체적으로 설명해 보겠다.

세 사나이가 사막을 걸어가고 있었다. 이들의 등에는 사막을 무사히 건널 수 있을 만큼의 양식과, 이들의 머리 위에는 이들을 사막 저편으로 인도해 줄 별이 빛나고 있었다. 그런데 한 사나이는 등에 있는 양식이 먹는 것인 줄도 모르고 그냥 짊어지고만 간다. 그리고 머리 위에서 빛나는 별이 자신에게 사막 저편으로 건너는 길을 가르쳐 주고 있음도 몰랐다. 그래서 그냥 걸었다. 이 사나이가 언제 사막을 건널 수 있을지 그것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었고, 이 사나이에게 있는 것은 오로지 배고픔과 추위, 그리고 가끔 가다가 만나보는 조그마한 즐거움뿐이었다. 그러다가 어느새 사막을 건너야 한다는 사실도 잊은 채 그냥 사막을 방황할 뿐이었다.

또 한 사나이는 다행히도 사막을 건너본 이를 만날 수가 있었다. 그래서 그는 사막을 건넌 이들은 아무도 양식이라는 짐을 짊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를 통해 들었다. 그리고 사막을 건넌 곳에는 길을 인도해 주는 별도 필요 없다는 말도 들었다. 그래서 그는 생각했다. 등에 짊어진 양식과 하늘의 별만이 없어지면 사막을 건넌 것이라고 그래서 등에 짊어진 양식을 버렸다. 그리고 하늘의 별도 보지 않고서 자신이 사막을 건넜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다. 이 사나이가 사막을 언제 건널 수 있을지 아무도 알 수 없었고, 이 사나이를 기다리고 있는 것 또한 굶주림과 추위 그리고 가끔 가다가 느낄 수 있는 조그마한 즐거움뿐이었다. 그러다가 굶주림과 추위에 지친 사나이는 사막을 건너야한다는 사실도 잊은 채 영원히 사막을 방황할 뿐이었다.

그런데 또 한 사나이는 사막을 건너기 위해서 등에 짊어진 양식에 의존하지 않으면 안됨을 발견하고서 그 양식을 먹으면서 별이 인도하는 곳을 향하여 열심히 걸었다.

이 세 사나이 중 사막을 건넌 이는 마지막 사나이뿐이었다.

이 비유는 성불이라는 의미를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비유라 할 수 있다. 여기서 사막이란 육도윤회를 이야기하는 것이고, 사막을 건넜다 함은 성불도를 이루었음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등에 짊어 진 짐이란 우리들의 업장이며 이것을 짊어지고 가면서 느끼는 여러가지의 감정 그것이 번뇌와 욕망이다. 그리고 이들 앞에 다가올 시련과 즐거움은 우리들의 행복하고 불행한 삶을 말한다. 그리고 별이란 우리들이 무사히 사막을 건너도록 인도해 주시는 부처님을 의미한다.

부처가 된다는 것, 그것은 사막을 무사히 건넜음을 말한다. 하지만 사막을 무사히 건너기 위해서는 등에 짊어진 양식을 먹어야 하며 또 별의 인도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등에 짊어진 양식을 먹는 법을 알고 별의 인도대로 간다는 것, 그 자체가 사막을 건넌 것은 아니지만 이 사람에게 있어서 사막을 건너는 것은 시간 문제이다. 그러기에 그것 또한 사막을 건넌 것과 마찬가지이며 이러한 모습을 사막을 건넌 것과 같은 모습이라고 해도 그다지 틀린 말은 아닌 것이다. 이처럼 사막을 건넜다는 것을 정각(正覺)을 이룬 경지 즉 완벽한 부처님이 된 것이라 한다면 사막을 건너는 법을 알고 그것을 실천한다는 것은 깨달음을 얻은 경지 즉 등정각(等正覺)을 이룬 것이 될 것이다.

우리가 육신을 보존하고 있다는 것, 이것은 우리들의 업장이 남아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기에 우리가 살아 있다는 것은 아직 사막을 건너는 중에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즉 정각을 이루어야만 한다는 사실을 뜻한다.

그러면 육신을 지니고서 부처가 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그것은 업장소멸하는 법을 알아 그것을 실천하고 있으며 부처님의 인도를 받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육신을 가지고 얻을 수 있는 부처의 경지란 정각이 아니라 등정각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이 등정각의 경치가 석가모니 부처님이 얻으신 경지인 것이며 우리가 육신의 몸을 가지고 부처가 된다는 것은 이 등정각의 경지를 얻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승불교에서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얻으신 깨달음을 유여열반(有餘涅槃=업이 남아있는 열반)이라 하고 부처님의 육신의 열반(죽음)을 무여열반(無餘涅槃=업이 남아 있지 않은 열반)이라 하는 것이다.

그러기에 엄밀한 의미에서 말한다면 깨달음을 얻는 것은 업장소멸의 방법을 알아 실천하며 부처님의 인도를 받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며, 이것은 업이 남아 있는 상태의 깨달음이기에 유여열반이며 정각을 이루는 것은 시간문제이기에 정각을 이룬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에서 등정각이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의 내용은 앞에서 말한 불성에 낀 자기 합리화와 자기변명이라는 이물질이 제거되어서 발견된 참 나이고 그것을 발견시켜 주기 위해서 노력하는 부처님에 대한 발견인 것이다. 그리고 완전한 부처를 이루었다는 것. 그것은 업장이 다 소멸되어서 다시는 육도윤회의 사바세계에 떨어지는 일이 생기지 않는 것, 즉 무여열반 이라 하며 이것을 정각을 이루었다고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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