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풍요와 다산의 상징 닭, 오래 동안 기르는 것은 `금기`?
풍요와 다산의 상징 닭, 오래 동안 기르는 것은 '금기'?
한국에서 닭은 신화의 시조탄생과 관련이 있다.
신라 건국신화로 박혁거세의 탄생신화와 더불어 알영신화가 구전되고 있다. 김알지 신화도 마찬가지다.
‘동국세시기’에는 정월원일(正月元日)에 벽 위에 닭과 호랑이의 그림을 붙여
액이 물러나기를 빈다는 기록도 있다. 여기서 닭은 액을 막는 수호초복의 기능이 있는 동물로 나타나며,
새벽을 알리는 동물, 귀신을 쫓는 벽사의 동물 등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또한 삼원일 풍속에 새벽에 닭의 울음이 열번이 넘으면 풍년이 든다고도 했다.
닭은 많은 알을 품어 병아리를 까기 때문에 풍요와 다산의 상징으로 여겨진 것으로 보인다.
닭[酉]은 12지의 열 번째 동물로서 계유(癸酉), 을유(乙酉), 정유(丁酉), 기유(己酉),
신유(辛酉) 등으로 순행하며 시각으로는 오후 5시에서 7시, 달(月)로는
음력 8월, 방향으로는 서(西)에 해당하는 시간과 방향을 지키는 방위신이자 시간신에 해당한다.
캄캄한 어둠 속에서 여명(黎明)을 알리는 닭은 상서롭고 신통력을 지닌 서조(瑞鳥)로 여겨져 왔다.
새벽을 알리는 우렁찬 닭의 울음소리! 그것은 한 시대의 시작을 상징하는 서곡(序曲)으로 받아들여졌다.
닭이 주력(呪力)을 갖는다는 전통적 신앙도 그 여명을 하는 주력 때문일 것이다.
밤에 횡행하던 귀신이나 요괴도 닭 울음소리가 들리면
일시에 지상에서 사라져 버린다고 민간에서는 믿고 있었다.
‘날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상에서 생활하는 존재양상의 이중성’,
‘어둠과 밝음을 경계하는 새벽의 존재’, 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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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담의 세계에서는 닭의 울음소리가 구원의 소리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어둠과 음기(陰氣)에서 힘을 쓰던 귀신이나 도깨비가 광명과 양기(陽氣)를 알리는 닭 울음소리가 나자 도망을 가버려서 그것에 곤욕을 당하던 주인공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난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기르는 가축 중에서 닭은 소보다 덩치가 작고 힘도 약하다. 개나 고양이보다 영리하지도 않은 미물이다. 그러나 선비들은 닭에게도 배울 것이 있다고 겸손해 했다.
닭은 흔히 다섯 가지 덕(德)을 지녔다고 칭송된다.
“머리에 관을 쓴 것(닭의 벼슬[冠])은 문(文)이요, 발에 갈퀴를 가진 것(발톱)은 무(武)요, 적에 맞서서 감투 하는 것은 용(勇)이요, 먹을 것을 보고 서로 꼭꼭거려 부르는 것은 인(仁)이요, 밤을 지켜 때를 잃지 않고 새벽을 알림은 신(信)이다. - ‘韓詩外傳’”라고 칭송한 것이 닭의 오덕(五德)이다.
닭은 울음으로써 새벽을 알리는 빛의 도래를 예고하는 존재이다. 닭은 여명, 빛의 도래를 예고하기에 태양의 새이다. 닭의 울음은 때를 알려주는 시보의 역할을 하면서, 앞으로 다가올 일을 미리 알려주는 예지의 능력이 있기도 하다. 장닭이 훼를 길게 세 번 이상 치고 꼬리를 흔들면 산에서 내려왔던 맹수들이 되돌아가고,
잡귀들의 모습을 감춘다고 믿어왔다.
닭은 주역(周易)의 팔괘(八卦)에서 손(巽)에 해당하고, 손의 방위는 남동쪽으로,
여명(黎明)이 시작되는 곳이다. 그래서 닭은 새벽을 알려주는 상서로운 동물, 신비로운 영물로 간주한다.
닭이 날개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지상에서 생활하는 존재양상의 이중성은
어둠과 밝음을 경계하는 새벽의 존재로서의 상징성을 내포하고 있다.
고려시대에도 닭은 좋은 징조를 알리거나 악한 것을 퇴치하는 신비스러운 능력을 지닌 영물로 여겨졌다.
현종이 꿈에 닭소리를 듣고 왕위에 올랐다는 얘기도 있다.
고려 때 황해도 장연군에 있는 어떤 절에 스님이 많이 살았는데,
날마다 안개가 끼고 스님이 한 사람씩 없어져 마지막엔 다섯 스님만이 남아 공포에 떨고 있었다.
그때 백발노인이 나타나 흰 닭을 주고 이것을 길러보면 괴이한 일의 수수께끼가 풀릴 것이라 했다.
이 닭을 기르자 괴변이 없어졌다.
닭의 부리에 늘 피가 묻어 있어 스님이 이상히 여겨 닭을 따라가 보았더니 큰 땅 구덩이로 가는 것이었다.
스님이 내려다보았더니 큰 지네와 죽자살자 싸우고 있었다.
지금까지 지네가 사람을 잡아먹었는데, 닭이 이것을 퇴치한 것이었다.
그래서 계속 닭을 기르고 절 이름도 계림사(鷄林寺)라 하였다고 한다.
신화로 보는 닭의 상징성
무속신화와 건국신화에서 닭울음소리는 천지개벽이나 국부(國父)의 탄생을 알리는 태초의 소리였다.
제주도 무속신화 ‘천지황 본풀이’ 서두에 “태초의 혼돈상태에서 암흑이 계속되고
오색구름만 오락가락할 때에 천황닭[天皇鷄]이 목을 들고, 치황닭[地皇鷄]이 날개를 치고,
인황닭[人皇鷄]이 꼬리를 치며 크게 우니, 갑을동방에서 먼동이 트기 시작하였다”는 사설이 읊어진다.
닭의 울음과 함께 천지개벽이 되었다는 것이다.
문헌에 닭이 처음 나타난 것은 삼국유사에 기록된 박혁거세의 부인 알영왕후의 탄생담이다.
경주 알영 우물가에 계룡이 나타나 왼편 갈비에서 여자아이를 낳았는데,
자태와 용모가 유난히 수려하였으나 입술이 닭의 부리와 같았다고 한다.
월성의 북천에 가서 목욕을 시키니 부리가 빠졌고, 이 여자아이가 박혁거세의 배필이 된다.
이렇게 닭은 위대한 인물의 탄생을 예고한다.
신라 김씨 왕계[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의 탄생도 마찬가지다.
닭이 울어 알려서 탄생지 숲 이름을 계림(鷄林)이라 하고
나라 이름까지 그렇게 명명했다는 얘기가 구전되고 있다.
호공이 밤에 월성을 지나가다가 나무에 황금 궤가 걸려있고 그 밑에서 흰 닭이 울었다는데,
황금 궤 안에서 동자가 나왔고, 금궤에서 나왔다는 이유로 성을 김씨라 했다는 것.
여기서 나라를 통치할 인물이 탄생했음을 알리는 흰닭의 울음소리는 빛의 상징으로서,
자연상태의 사회에서 국가적 체계를 갖춘 단계를 예고하는 존재이다.
시계가 없던 시절의 밤이나 흐린 날에는 닭의 울음소리로 시각을 알았고,
특히 조상의 제사를 지낼 때면, 닭의 울움소리를 기준으로 하여 뫼를 짓고 제사를 거행했다.
수탉은 정확한 시간에 울었으므로, 그 울음소리를 듣고 밤이 깊었는지 날이 새었는지를 알 수 있었다.
오래 동안 기르는 것은 ‘금기’
새벽을 알리는 시보로서 닭소리는 고전소설 심청전을 통해서도 쉽게 알 수 있다.
닭아, 닭아, 우지마라,
네가 울면 날이 새고,
날이 새면 나 죽는다.
나 죽기는 섧지 않으나,
의지없는 우리 부친
어찌 잊고 가잔 말가
심청이가 아버지와 이별하고 뱃사공에게 팔려가기로 약속한 날 새벽에 닭 우는 소리를 듣고
자탄하는 대목이다. 여기서 닭소리는 새벽, 즉 날의 밝음을 알리는 상징이다.
한편으로는, 민요와 시조에서 밤에 임과 함께 지내다가 날이 새면 이별해야 하는 것이 아쉬워서
새벽을 알리는 닭의 울음소리를 원망하는 구절로 인해 닭은 미움을 받기도 한다.
닭을 집에서 기르면서 인간과 너무 가까운 자리에 있게 됐고 설화의 세계에서는 의인화되거나
신령스러운 것이 되는 경우도 있으나, 오래 묵으면 영물이 되어 사람을 해치기도 한다는 전언이 있다.
그래서 ‘계불삼년(鷄不三年)’이란 말처럼 우리 풍습에서는 닭을 오래 동안 기르는 것을 금기시하기도 했다.
옛날 어느 곳에 십년 묵은 닭 한 마리가 있었다. 요술을 부려 밤중에 주인에게 “문안드립니다”라고
인사말까지 했다.
이상하게 여긴 주인이 어느 날 밤 몰래 지켜보니까 닭이 재주를 몇 번 넘더니 예쁜 계집으로 둔갑을 했다.
주인이 놀라 여인을 쫓아냈더니, 그녀가 산으로 가서 여우에게 청을 했다.
여우가 자신의 주인집으로 가서 세 번만 울어주면 자기가 가서 원수를 갚겠다는 것이었다.
그러자 여우는
“그 청은 어렵지 않으나 내가 울 때에 적두 팥잎을 절구에 찧어 귀에 넣으면 내가 죽으니 염려된다”고 했다.
그 말을 엿들은 주인은 여우가 와서 막 울려고 할 때에 찧어둔 팥잎을 여우 귀에 넣었더니 죽었다.
여인도 다시 닭으로 변해 닭장으로 들어가는 것을 주인이 잡아 죽였다고 한다.